피땀으로 한땀한땀

이주연 읽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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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 바튼, 피프티 사운즈, 민민
Polly Barton, Fifty Sounds, min-min

2045자
2024년 6월 7일



 ¶ 민민: 공기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 혹은 소리에 흠뻑 젖은 상태

 습기와 함께 소리가 들렸다. 아침이 되자, 커튼 없는 창문 안으로 햇살이 내리쬐면서 매미가 울기 시작해 공기를 더욱 짙게 만들었다. ‘민민(min-min)’은 일본어로 이 울음소리를 표현한 단어다. 높고 밝은 ‘i(아이)’ 소리는 영어로는 ‘ee(이)’에 가깝게 들리는데, 매미의 울음을 표현하는 단어가 영어에는 없어서 나에게는 거의 항상 기이한 연상 작용을 일으켰다. 사실 난 매미가 서식하는 곳에서 시간을 보낸 적도 없어서, 그 커다란 음량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나 들린다는 점에서 자연이 만들어낸 것이라기보다는 어떤 미지의 기술 산물인 것 같아 놀랐다. 내가 접해본 적 없는 건설 현장의 공구라던가 미래주의적 사이렌 소리가 퍼지는 것 같기도 했다. 떠들썩하고, 질감 있고,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이 매미 소리는 내가 외국 땅에 있다는 걸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기에 도착한 뒤부터 들리는 모든 소리가 다 그랬다. 섬으로 떠나기 전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하기 위해 며칠 동안 지낸 도쿄에서는, 드럭스토어 앞에 서서 확성기에 대고 소리치는 사람들, 열차 안팎에서 끊임없이 울리는 종소리와 안내 방송, 그리고 횡단보도 신호등이 째깍거리는 소리에 충격을 받았다. 사람들의 실제 대화를 제외한 모든 소리가 시끄럽게 느껴졌다. 내가 배정된 새 학교에서는, 하얀 벽과 진흙색 래미네이트로 마감된 아직은 낯선 복도를 걸어가면, 미지의 동물이 리듬을 타며 숨을 헐떡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일본 품종의 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몇 주가 지나서야 녹슨 빨간색 모래 위에서 하얀 유니폼을 입고 연습하던 야구부 사람들이 입을 쩍 벌리고 외치는, 전에는 한 번도 사람이 내는 걸 들어본 적 없는 소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하루 종일 앉아 있던 직원실이 있었다. 섬에는 여름 방학 때 도착했는데, 교사들은 종일 동아리 활동을 가르치느라 학교 곳곳에 흩어져 있었고, 모든 것이 놀라울 정도로 조용해 보였다. 곧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이제 매일 교직원 회의가 시작하면 모든 교사가 일어나 직원실 끝, 내 책상 바로 옆에 서 있는 세 통의 큰 머리(교장, 교감, 학생부장)를 향했다. 그러면 나는 그 소리의 교차점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정말 대단한 소리였다. 주위의 사람들이 입을 벌리고 2분, 3분, 5분에 걸쳐 드문드문 이해가 가는 문장을 쏟아내는데, 듣기만 해도 숨이 막히고 머릿속은 궁금증으로 가득 차게 된다. 인간의 뇌가 그 정도 길이의 문장을 마음대로 만들어내는 건 차치하고도, 어떻게 듣고 이해할 수 있는 걸까? 다들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는 있을까? 그러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이 ‘데스케레도모’라는 문장 구조는 ‘데스크’랑 관련이 있나? 이건 대체 언제 끝날까?

 회의가 끝나고 나면 더 많은 대화가 오가고, 학생들은 끊임없이 들어오고 나가고, 문을 열 때마다 특정한 어구를 말하고 나갈 때는 같은 어구를 과거형으로 말하고, 책을 나르고, 서류에 서명하고, 숙제를 채점하는, 이 모든 거래는 내가 도저히 처리할 수 없는 빽빽한 암호들과 낯선 리듬을 통해 조정되어서, 나는 그저 보고, 듣고, 빨아들이고, 빨아들이고, 빨아들여서 결국에는 소리에 흠뻑 젖을 수밖에 없었다.

 소리에 젖은 뒤 그 단어들에서 멀어졌을 때도, 전에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것처럼 단어들은 내 귓가를 울리며 자리에 남아 있었다. 민민 민민. 내가 일본어를 제대로 말하거나 이해하기 전에는, 확실히 내가 일본어에 제대로 집착하기 전에는, 이 소리가 내 마음속의 지속적인 사운드트랙 역할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몸은 하루 종일 수집한 소리로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밤에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면 나는 그 단어들에 잠겨 들었다. 소리들은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미지의 경계에서 맴돌고 있었다. 마치 이해력은 더 이상 내 뇌 속에서 사용되는 통화(通貨)가 아닌 것 같았고 나는 그저 단어의 리듬만 처리하고 있었다. 그러고 나면 그중 몇몇 조각들이 내 꿈속으로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와, 마치 이미지의 흐름 위에 떠 있는 구명보트처럼 야무지게 맴돌고 있었다.